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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교회

[예인교회 설교후기]구원은 삶의 밑바닥(BOL)에서 세워진다.

오늘 설교는 공의와 정의로 부르심 두 번째, 구원(공의와 정의를 논할 자격)에 대한 내용이었다.  


오늘 정성규 목사님의 설교의 핵심은 

진정한 정의와 공의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먼저 구원이 선행되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는 온전한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자신의 인정하고 성숙함에서 문제를 풀어야한다는 것인데, 

구원을 통해서 하나님과 만나면 요엘서 2장 28장~30절 처럼 차별이 없어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받은 은혜는 

"누구든지 나 하나님에게 구해 달라고 부르짖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다" 로마서 10장 13절 메시지성경. 

그런데 그 구원은 누군가의 영접 기도를 따라함을 통해서, 

혹은 한 번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정말 내가 구원을 받지 않으면 안되겠구나' 라는 절박한 상황 속에서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으로 예수님께 손을 내밀 때, 바로 진정한 절망의 늪에서 잡는 주님의 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난 이 상황을 BOL(Bottom of Life)로 명명해 보았다. 

주님의 역사는 설교자의 이야기처럼 '예수 한번 믿어볼까?' 정도로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주님의 구원 역사는 각자의 상황 속에서 다양할 수는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절실함' 이라는 것에는 깊은 공감을 갖고 있다. 


어떤 이는 세상이 구할 수 없는 자녀의 죽음 속에서 간절히 주님을 찾았고, 

어떤 이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고칠 수 없는 병을 낫고하는 간절한 희망을 가지고 주님을 찾았다. 

또 어떤 사람은 세상에서 받고 있는 사회적 고립(왕따)으로부터 벗어나고자 주님을 찾았다. (삭게오) 


그럼 나의 '절심함'은 어디에 있을까? 


하나님이 보내주신 세상에 대한 관심과 호기심으로 여러나라를 다니며 그분이 가진 '공평과 정의'에 대한 고민이 

내 안에 있었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구마을에 대한 관점으로 우리 마음에서 소외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아픔에 치유를 어렵다라도 

눈물이라도 닦아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몸부림을 했던 기억이 스쳐지나간다. 

내 삶의 바닥이라고 느껴지는 그 절망 속(BOL)에서 다시금 내게 손을 잡아 주신 주님!  

나의 '절박함'을 다시금 공평과 정의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내 삶의 영역에서 정말 금식하며 그 아픔을 치유받기 위한 절박함으로 새로운 새벽 사경회를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