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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교회

[부천 예인교회 성경강좌 후기] 믿음과 행함, 강사 숭실대 권연경 교수

4월 한달간 부천 예인교회에서는 식사 후 오후 2시부터  예배가 진행되는 '복사골 문화센터'에서 성경강좌가 4월 한 달간 진행된다. 지난 주와 이번 주는 숭실대 권연경 교수를 통해서 '믿음과 행함'에 대한 강좌가 진행되었다. 

<부천 예인교회, 주일 성경강좌 후 기념 촬영>

개인적으로 '믿음과 행함'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있는 부분은 개인적으로 겪어왔던 교단적 맥락도 있고, 한국 신학에서는 첩예한 대립적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었다. 말씀은 비교적 성경적 원리에 의해서 쉽고 편하게 설명되어졌다. 아래는 강연 내용을 필기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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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현실적 필요. 돈과 관련된 아파트, 집 등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룹니다. 

   우리의 사회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해답이라고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 믿는다고는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살고 있는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신앙으로 뭔가 다른 것 같기는 한데 그러나 생각은 똑같은 것은 아닌지?  


  실제로 한국 교회의 대부분의 논리는 똑같은 것 같다. 

    어쩌면 실제 삶은 더 세속적인지 모르겠다.  

    전 노무현 대통령의 이야기가 이명박 장로의 이야기보다 더 기독교적이었다는 말처럼 믿음은 실제를 가지고 증명되는 것은 아닌지? 


 우리는 생수의 근원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주님은 내 인생으로 개입하신 후 이끌어 가신다. 


배포한 프린트 물은  '믿음'에 대한 생각을  <로마서 산책> 이란 책에서 썼던 내용이기도 하다. 

  우리의 믿음으로라는 말을 -> 행위 없이로 생각하는 경우 많다. 그럼  믿음은 = 행위 말고? 

  복음의 핵심은 순종은 믿음으로 다시 믿음은 행동으로 그래서 열매를 통해서 그 믿음을 시험하게 된다.   


  우리의 행위 없이라고 생각하는 믿음 중심의 신앙을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할까? 

  바울이 강조했던 믿음의 본래적인 의미는 우선 갈라디아서를 통해서 살펴보자.  

    갈라디아서에서 이야기한 '믿음'은 

       3장 2절을 우리 일상의 언어로 표현하면  '내가 한 가지만 물을께~ 성령이 율법을 통해서냐? 듣고 믿음을 통해서냐?' 정도로 들을 수 있다.  

   성령을 우리가 만들 수 있느냐?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다. 해답은 밖에서 와야한다. 

   성령이 인간의 어떤 조건에 따라서 역하시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노력 여하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셔야한다는 것이다.  


  왜? 믿음이 해답이냐? 믿음으로 성령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왜?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나를 생각하면 된다.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수 밖에 없다. 해답이 우리에게는 없다. 

  성령은 준다는 개념이고 우리는 받는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야한다.  '성령 체험'은 없다. '성령'은 받는 것이다. 

  성령은 은혜의 선물! 구원은 성령이 없이는 안된다.  

  믿음을 강조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 때문이다. 


  아브라함을 경우를 살펴보자. 

    아들을 준다고 하나님이 약속을 하셨다. 그러나 정말 어려운 상황 속에서 믿음이 필요했다.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에 손을 댓다는 표현이 

         = 역사하셨다. 

    이삭 = 성령으로 잉태된 자. 

    구원의 소망 = 성령으로 태어난 자. 

    이제는 육체로 끝내려하는가?  

    의의 소망을 기다리는 것 -> 믿음으로 = 성령으로 

    성령을 포기하면 의의 길을 포기하는 것. 

    성령을 쫓아 행하라~ 성령을 쫓아가지 않으면 


  바울 서신에는 지옥의 개념이 없다. 

    

   우리의 삶의 씨를 성령 안으로.  성령의 밭으로 씨를 뿌리면 -> 영생을 수확. 

   영생을 거져 주는 것으로 쓰여진 부분은 거의 없다. 

   생명은 하나님의 소관.  

   조상 = 아버지.  믿음의 조상 = 아브라함 = 아버지. 


   하나님이 나를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것을 듣고 믿고 갈라디아 교인들이 바울의 설교를 듣고 성령이 생겨났다. 

   나는 성령으로 사역한다. = 복음의 열쇠.   


  웨슬리도,  부흥사도, 그러나 나는 ?? 

  

  내가 필요한 믿음.  나를 이끌어 가는 삶. 

    가끔 이상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말하기만 해도 믿는다는. 

    여전히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 역사하신다는 믿음. 성령의 역사. 

    복음이 아니라 자신의 만족에서 기인되는 위선일 수 있다.(바리세인) 


   성령이 없으면 믿음은 가짜.  위선? 

   내가 무엇을 심든지 뿌린데로 거둔다.  

   실질적인 삶에서의 변화. 하나님의 역사를 믿는 것이 역사. 성령. 

   

   우리의 삶에서 인도하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사는 삶. 위선적 폼인지? 

   내 삶에 성령이 역사하는가? 하나님의 살아있는 역사를 믿는 것. 

   에스겔서. 


  실질적인 삶에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는 삶. 

    우리의 삶을 통해서 드러나야 한다. 

    땅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 지는 것. 예수님의 제자들. 

    제자들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들. 

    우리의 교회 공동체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가 확인이 되지 않는다면. 

    우리 속에 나타는 하나님. 


  교회를 통해서 예수님이 자신의 능력을 알리신다. 

    예수님이 대신해서 그 능력을 알리신다. 

    서로 사랑하라! 서로 사랑하면 이로서 너희가 내 제자인줄을 알리라. 

    서로 사랑하는 모습. 사랑이 있는 공동체. 


  살아서 역사하시는 하나님. 실제로 우리의 삶 속에서 함께 행동하는 그리스도인. 

    지금 내가 문 밖에서 두드린다. 

    생명의 선물.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길. 

    

하나님의 생명이 우리의 삶 속에서 드러나야한다. 

  나의 삶은? 


  이성.  제대로 알면 나의 삶이 바뀐다. 

     정확하게 알게되면 사고가 달라진다. 

     정확하게 알아가는 관정. 

     정확하게 듣는 것.  정확하게 읽는 것.  잘 들으려면 경손해져야. 


  정직한 것이 중요한데, 자꾸 장난을 친다. -> 끝임없이 자신을 중심으로 

  그래서 말씀이 중심. -> 하나님의 말씀을 살아 있다. 

  말씀을 정복하자?  말씀에 사로잡히는 것! 말씀은 살았다. 

  위선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 


  지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게되는 것 vs 성령의 역사 

     감성적인 부분. 성령론의 강조.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이성적으로 하나씩 확인하는 과정. 

     이성 vs 감성.  성령에 대한 설명이 어렵다. 

     말씀을 배워가는 성령운동.  


  각자 믿음을 출발하는 배경은 다를 수 있다. 

  이지적 -> 생각의 실체 

  체험적 -> 체험의 실제. 


  한국교회 -> 정신 분열증.  인격의 분열. 삶을 경험하는 방법이 필요. 

              은혜의 말씀을 너무 피상적으로 들어왔다. 

              통합적인 복음의 이해 

              위선을 극복하는 것에서 출반. 

              한국교회의 올바른 복음. 


  정확한 깨달음을 우리에게 많은 도전과 자극을 준다. 

      우리가 얼마나 진솔한가? 

  복음이 진짜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