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사랑 나의 교회

[부천예인교회 설교 후기] 아둘람4, 다윗의 변절

< 다윗을 도피 생활 경로 >
사진출처 : archintor.egloos.com


이 설교 후기는 3월 4일 부천 예인교회 정성규 목사의 설교 '시글락 - 구부러짐'을 듣고 작성되었다. 


지조 vs 변절

사실 역사 속에서 지조와 변절에 대한 이야기는 해석하는 자의 여러 시각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보였던 것 같다. (역사가의 해설에 따라서 변화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역사도 성공의 역사를 중심으로 기록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난 사마천의 사기를 무척 좋아한다.) 오늘 설교에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던 다윗이 변절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보다는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길을 가게되는 과정을 변절로 설명했다. 


본문의 배경은 다윗이 사울을 피해서 결국 블레셋으로 도망해서 지냈던 시기이다. 


(기도 없이) 나의 생각으로 판단하기... 

본문 사무엘상 27절 1절에서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하며 사울의 손을 벗어나기 위해서 결국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정성규 목사님이 주목한 것은 바로 1절 가장 앞에 있는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이다. 여기서 "생각"의 원어로 보면 '스스로에게 말하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앞서 살펴보았던 사무엘상 23장 2절에 있던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라고 기도하며 그일라와 전쟁을 전개했던 모습과는 사뭇 대조되는 모습이다. 


다윗을 변절

이 모습을 정성규 목사님은 '다윗의 변절'이라고 표현했다. 하나님께 먼저 묻고 공동체와도 소통하며 하나님의 뜻을 하나하나 진행했던 다윗이 위험에 빠지자 그러한 태도와 자세가 바뀌어(변절해서) 하나님께 묻기 보다는 스스로 생각한 후 판단해서 행동했다는 것이다. 어차피 어떤 사건이든 일어나면 먼저 판단하게 되나, 그 생각이 하나님께 갔던 이전에 비해서 이번 블레셋으로의 망명은 기도하지 않고 스스로의 생각으로 갔다는 설명이다. 


시글락 = 구부러짐

그렇게 블레셋으로 망명한 후 있게 된 곳은 '시글락'이라는 곳이었다. 재밌게도 '시글락' 원어의 뜻은 '구부러짐'이라는 것이다. 물론 다윗 입장에서는 이스라엘에서의 삶도 그리고 시글락에서의 삶도 결코 편하지는 않았다. 정말 매 순간 삶과 죽음을 왔다갔다는 전쟁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시글락에서 다윗이 했던 일은 블레셋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 자비로웠던 다윗이 삼상 27장 9절에서는 무자비한 살육자로 변신한다. "다윗이 그 땅을 쳐서 남녀는 살려두지 아니하고 양과 소와 나귀와 낙타와 의복을 빼앗아 가지고 돌아와 아기스에게 이르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스라엘의 차기 왕으로 선택받았던 다윗이 이스라엘과 대치하고 있었던 블레셋의 편으로 전쟁을 했던 것이다.  


어메이징 그레이스 (헷세드)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이다. '햇세드'라는 표현처럼 '하나님의 언약적인 사랑'은 결코 포기함이 없으시다. 내가 나를 포기할지라도 하나님은 결코 포기하지 않으신다. 그 사랑은 구약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했던 그리고 신약에서도 마지막 심판의 때에는 결국 그들(이스라엘 사람들)도 일부 구원하신다는 그 놀라운 사랑의 언약을 표현하고 계시다. 


하나님의 간섭하심

다윗의 시글락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간섭하심은 2가지 정도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블레셋과 이스라엘의 전쟁에서 왕의 호의를 맡을 뻔 했으나, 주변 신하들의 반대로 결국 이스라엘과의 전쟁에는 참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만약 참전했다면… 어휴~ 아찔해지는 장면이다. 


두 번째는 나발의 추수곡식을 받으려고 하다가 외면당해 그를 죽이려고 가는 도중에 아비가일을 만나게되는 사건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나발을 죽게하셨고 다윗은 아비가일과 결혼해서 후일 솔로몬까지 낳았다. (개인적으로는 다윗을 블레셋 생활 속에서 아비가일의 일이 하나님의 간섭으로 볼 수는 있지만, 블레셋 망명생활과 어떤 연계성이 있는지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 


신앙 = 다윗의 깊이 있는 기도 배우기 

아무튼 이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리고 지속적으로 행동하기 전에 하니님께 먼저 구하는 태도를 묵상하게 되었다. 다윗은 아무래도 극심한 사울의 추격이 너무 힘들어져서 하나님과의 뜻과는 다른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윗은 순간 하니님께 기도했던 태도와 자세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부르신 하나님의 비전도 결국 잃어버릴 수 있는 결정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삶은 어떠한가? 


'이에 재웅이가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하며 기도와 말씀의 생활을 하고 있는가? 어렵다. 매일 말씀을 보고, 모든 행동 전에 기도를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아직 습관화된 모습은 잘 나오지 않는다. 또 현재 다소 나태해진 삶으로 하나님에 대한 간절함이 무지 약해졌다. 많은 어려움 속에서 죽음의 연단을 받았던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하나님을 향해서 외치고 부르짖으며 그 마음을 사기 위해서 엄청 노력했다. 


기도와 말씀으로 생활하는 것이 어렵고 힘들지만, 그것 외에 나의 삶의 기준을 잡을 만한 다른 방도는 없다.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

그리고 다윗이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꼈듯이 나도 내 삶 속에서 엄청난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 은혜와 하나님의 섬리하심은 나의 삶 속에서 결코 거부할 수 없는 흔적들로 남아 있다. 아직 내 삶의 날씨는 흐림이다. 해처 나가야할 굽이 굽이가 너무도 많다. 근데 요즘은 다소 자포자기, 어떻게든 되겠지~ 힘들다~ 애라 모르겠다~ 가 너무 많은 것 같다. 


ㅈㅐ ㅇ ㅜ ㅇ ㅇ ㅣ ㅡ  시편 

세상은 내게 세상을 살기 위한 아이템으로 돈, 권력, 지식, 건강, 인맥 등을 펼쳐 보입니다. 

한 때는 나의 손 안에도 그러한 아이템들 가운데 한 두 가지는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하며 생활했던 적도 있습니다. 

나도 세상에서 멋진게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었으니까요~ 

그러나 환난의 날이 이르매 내 손 안에 있는 것으로 생각했던 아이템들은 존재의 자취를 찾아 볼 수 없게 됩니다. 


그 바닥을 보고 나서야 내가 이루었던 일들이 내가 아닌 하나님과 동행함으로 이루어냈던 열매들이었음을 생각해 내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소유했던 아이템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천하무적 아이템이 내게도 동행했다는 사실을 알고 그 아이템을 찾아 보고 있으나 잘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삶을 배워가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거나 나의 생각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잠잠히 여호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행복이요 내 삶의 방향이라는 사실입니다. 


다시금 나에게 물어 봅니다. 

나는 삶은 여호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있는가? 

하나님을 기쁘게하는 것은 무엇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존재를 매 순간 그 분 안에서 발견하고 

그 분과 동행하며 생활해 나가는 것이라는 것을 알 것 같은데, 알 것 같은데… 

주님, 잘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래서 믿음이 필요한가 봅니다. 


믿음도 내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있지만…  


주님~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 '믿음'을 다시금 사모합니다. 

놀라운 은혜를 주셨던 주님~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셨던 주님~ 

영원한 행복을 느끼고, 참 기쁨을 선물해 주셨던 주님~ 

나만 행복한 것이 아니라 남과 함께 행복하는 방법을 선물해주셨던 주님~ 


내가 주님을 의뢰합니다. 

주님의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며 천하무적 아이템이십니다. 

내 안에서 주님의 사랑을 사모하는 열망을 품어 주시고, 그 사랑으로 다른 사람들도 품고 사랑해 나가는 생활되게 하소서! 

Dynamic Life! have a exiting time!! 누리는 내일을 소망합니다. 


감사와 모든 영광을 주님께 돌립니다. 

오늘의 말씀을 다시금 나의 맘에 새기는 삶이 되게 하시고, 

매일 매일 아니 우선 내일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속에서 생활하는 하루되게 하소서!  


여호와를 의뢰하며 그의 품에 거하기를 사모하는 자에게 놀라운 시간을 허락해주시는 

나의 사랑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