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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 나의 교회

[예인교회 설교후기] 예인교회의 공의와 정의는...

오늘 설교는 여느 때와는 달리 교회에 전반적인 운영 방향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아마도 정성규 목사님은 어제 진행된 지명방어의 교회 행사를 마치고나서 설교를 대폭 수정한 것으로 보인다. 


다소 익숙하게 들릴 수 있는 교회 운영적 방향에 대한 설교였지만, 오늘 설교에서 있어서는 정성규 목사님이 목회적으로 양보하기 어려운 절대적 가치와 기준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짙으로 호소력을 표현되었다. 교회의 운영 방향뿐만 아니라 오늘 설교의 대부분은 (개인적으로 느껴지기에) 목사님 개인의 삶과 함께 비춰질 수 있는 이야기들로 들렸다. 


짐월리스가 이야기하는 것처럼 진정한 회개는 삶의 형태와 목적 자체가 완전히 바뀌고, 새로워지고, 태도와 성품이 달라지고, 방향이 전환되는 변혁적 언어이다. 


다시금 반문하게 된다. 

나는 회개하였는가? 만약 회개를 했다면 다시금이 물어보신다! 

그럼 내 삶에서 회개 전과 회개 후의 삶은 어떤 형태와 목적이 바뀌었는가? 

성품의 어떤 점이 달라지고 방향은 어떻게 전환 되었는가? 


부활절 두 번째 주일을 맞아, 주님은 우리에게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신다. 


초등부 5학년 담임을 하고 있는 난 공과공부시간에 우리 아이들에게 물었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도 이야기한다. '증인'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고, 예수님을 따른 다는 것은 그 분의 율법을 따르는 것이라고! 


설교에서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듯이 '구원'은 믿음으로 받고, 그 믿음을 증명하는 방법은 바로 그 분의 뜻대로 사는 것이라고, 설교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은 바로 '공평과 정의'를 내가 속한 가정, 직장, 사회에서 실현해 나가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오늘은 더 구체적으로 교회에서 '공평과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우리도 부족하지만, 이 땅의 소외된 자들을 위해서 나눔을 실천하는 길이라고!! 


그러면서 목사님은 성토하셨다. 어제 나눔사역으로 진행된 지명방어 사역에 우리 교인들이 35%만 참석했다고!  예인교회 초기에는 80~90%였던 지명방어가 이제는 35%로 떨어져있는 현실! 

교회는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우리의 성장을 통해서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에 인도되는 사람이 더 많아 지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숨어서 신앙생활하려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목사님은 좀 더 강하게 그런 사람들의 구원문제까지 걱정하셨다. 그리고 강하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우선 교회가 커져서 그러한 결과가 발생했다고 보시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아져야한다고! 

그래서 우리는 분립을 해야한가고 어느 때보다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사실 그 어조는 목사님의 삶에서 나오는 신앙적 가치와 같은 것이여서, 눈물로하는 고백처럼 들렸고, 그 삶을 공감하기에 듣는 나로서도 나의 삶과 신앙적 가치를 점검할 수 있게 만들어 주었다. 내겐 바로 성령의 조명하심이었다~  


------------------- 개 인 삶 의 나 눔 ---------------

부끄럽지만, 

교회 성도라는 측면에서 (또 이런 긴 글은 별로 안 보실 것이란 기대로.. ^^;) 

저도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는 개인 업무적인 영역에서의 삶을 나눠보겠습니다. 


스스로 자신에 대해 충만한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던 청년이 있었습니다. 

큰 틀에서 자신의 목표를 세워가며 나름 착실히 살아가던 그 청년은 살아가면서 점차 자신이 스스로 넘기 어려운 현실적 벽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한 번 넘어지고 두 번 넘어지고 지속적으로 넘어지다가 결국 피를 흘리며 주님은 이젠 정말 내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게 하셨습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전 이전에 제가 배워왔던 국제개발협력 업무에서 길이 막혀서 새로운 교육 사업을 시작해보기도하고, 

또 다시 길이 막혀 새롭게 학원이란 영역에 들어와서 작은 영어학습관을 운영하게 되었습니다. 사업과 연장 선에 있었기 때문에 시작에는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이전에는 주로 현실적이기보다는 가치를 추구하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익(영리)을 추구하는 학원의 현실은 저를 비롯한 저희 직원들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UA(Under Achieving)라는 미성취학생들(쉽게 말하면 나머지 공부학생들)을 담당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며 새로운 교육적 대안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현실적인 장벽들은 만만치 않았습니다. 

함께 회사를 운영하며 뜻을 함께 했던 이전 회사 맴버들은 영리활동에 가치적 동의를 어려워하며 하나 둘 떨어지기 시작했고, 전 새로운 직원들을 뽑아서 다시금 새롭게 하나하나 운영을 직접 담당하면서 교육을 진행해야했습니다. 


다음 만난 벽은 학원 내에 있는 기존 강사들의 기득권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와도 저희 센터에는 인원을 주지 않아서 지속적으로 7명 이내의 소수 인원으로 영어학습센터를 몇 개월간 운영해야했습니다. 결국 인건비도 마련하기 어려워 UA영어영재센터는 문을 닫아야했습니다. 


그럼에도 제가 발견한 하나님의 뜻은 학교에서는 하위권이라는 이유로 존재를 인정받지 못했던 아이들었는데, 

센터에 와서 새로운 활력을 얻고 일부는 공부에도 열심을 하기 시작하는 모습은 정말 선생님으로서의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마음에 큰 짐으로 남은 것은 몇 개월간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학생이 있어서 방학 기간을 이용해서 학원보다는 다른 활동을 권해 드리며, 몇 가지 다른 기관들에서 하는 캠프들을 소개시켜준 바가 있었는데, 

그 제안들 중 그 부모님은 유독 '청학동 예절학교'를 고집하셔서 방학 이후로 그 아이는 결국 중학교는 휴학하고 청학동에서 기숙생활을 하게되었답니다. 결국 그 아이이의 자유를 빼앗고 심각하게 구속하는 역할의 선봉이 되었다는 짐을 안게 되었습니다. 


UA센터의 사업 해체는 또 다시 경험하게 되는 좌절이었지요~ 그래도 감사한 것은 학원에서는 당시의 노력을 인정해서 제게 학원의 초등부를 비롯해서 중등부 전체 영어 과정을 기획해달라는 요청을 했고, 나도 현재의 학원 선생님들 중에서는 그러한 역할을 할 사람이 없다고 판단되어 지금까지 그러한 일을 해오고 있었습니다. 


기획은 수없이 많이 했는데, 아쉽게도 전체적인 실행권한까지 저에게 오지는 못했습니다. 

제게 주어진 실행권한은 절반도 채 되지 않는데, 전체적인 결과의 책임 추궁은 지속적으로 받게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학원의 방향이 제가 기획하는 좀 더 장기적인 학습 방식보다는 단기간의 시험 위주의 학습 방식으로 돌아가게되면서 제 역할은 급격히 줄어들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역할이 약해지니 이전의 계약 방식으로 학원에 남아 있자니, 학원에서는 인건비의 부담이 컸고 저도 미안했기에 계약을 파트로 돌리고 정리하는 방향으로 제안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학원에서는 지속적으로 계약을 하기에는 비용적으로 부담스럽고,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영어학습에 대해서 장기적인 학습 기획을 추진할 사람이 없었기에 쉽게 보내지고 못하는 상황이 몇 달 간 지속되었습니다. 


아주 깔끔하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감사하게도 학원은 업무적으로 마무리 잘 되어 가게 되었으며, 

전 이전에 하던 국제개발협력 업무로 복귀하게 되어, 

다음 달 부터는 국제워크캠프기구 www.1.or.kr 에서 필리핀 지역개발을 담당하게 되는 역할을 맡게 되었습니다. 

다시금 확실하게 내가 섬겨야하는 대상이 명확해졌고, 너무나 감사하게도 그들은 국제적으로 소외된 계층의 사람들입니다. 지금도 그들을 위한 기도를 하면 마음에 새겨져서 너무 감사하게 됩니다. 


앞으로는 또 어떠한 장애물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으나, 

제게는 광야와 같았던 학원에서의 생활을 통해서 너무나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감히 짐 월리스가 말한 '회개'를 입에 올리기는 어렵겠지만, 

전 그 시기를 통해서 분명히 다시금 새로운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내 뜻이 아니라 그 분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광야 속에서 다시금 덤으로 얻은 것 같은 인생을 느끼기도 합니다. 


어디서 무슨일을 하든 각자의 역할이 얼마나 소중하고,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조직) 속에서 개인의 역할이 매우 작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양한 사례들을 통해서 그 역할이 얼마나 클 수 있는지도 뼈 속 깊숙히 느껴보았습니다. 

제게도 부끄러운 모습도 많았지만, 다행히 입술로나 몸으로는 범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묵묵히 지키려했던 몸부림은 남아 있어서 감사 또 감사하게 됩니다. 


이전에는 내가 할 수 있고, 내가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이제는 정말 난 할 수 없고, 

주님은 할 수 있다는 마음으로부터의 고백을 가져 온 듯한 면에서는 삶의 형태가 바뀐 듯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포장된 나의 욕망을 이제는 내려 놓고, 

이제는 정말 오늘과 내일의 삶 속에서 주님의 동행하심을 구한다는 면에서는 삶의 목적이 바뀐 듯 합니다. 


성품과 태도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젠 주님이 내 삶 속에서는 다소 변혁적으로 다가 온다는 측면에서는 '회개'에 한 걸음 더 다가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회개가 성장이라면 그 성장은 예인교회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누가 이런 무시무시하게 긴 길을 읽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지만, 

모든 예인교회 성도님들께 감사드리며 이 글을 읽을지 모르는 성도님들과 함께 외치고 싶습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