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말씀묵상

[하나교회 설교 되새김질 6/28] 어떤 위로자가 될 것인가?


이 글은 2015년 6월 28일 상도동에 위치한 '하나교회' 정영구 목사님의 주일 설교 말씀(주제 : 위로자)을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오늘 설교 본문은 욥기 16장 1절부터 5절까지 그리고 고린도후서 1장 3절부터 11절까지입니다. 



욥을 아프게 했던 친구들의 위로

욥기에서는 자신을 위로한다고 이야기했던 친구들의 위로가 결국은 자신을 아프게 하는 끝이 없는 말의 위로라고, 욥은 친구들의 위로를 설명하고 있다. 욥은 최소한 자신이 위로하면 입으로는 상대의 마음을 강하게 하거나 근심이라도 풀어주었을텐데, 친구들의 위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 그리고 그 삶을 따르는 자들

반면 고린도후서에서 사도 바울은 환란 중에 진정한 위로자가 되어 주시는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가 환란을 당하는 것도 위로와 구원을 받게 하려는 것이고, 이는 우리를 통해서 다른 이들도 위로를 받게 하려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은 말하고 있다. 


고난과 위로 그리고 그 선순환의 고리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해서 먼저 고난을 감당하셨고,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부활하셔서 진정한 삶의 위로자가 되어 주셨다. 다시 그 사역은 제자들에게 주어져서 그들도 예수님처럼 고난을 받고 다시금 주님으로부터 위로를 받았다. 그 사역을 다시 그 제자들과 교제하는 다른 이들에게 전파되고 있다. 

 

구원의 필수과정 = 고난 + 위로

고난과 위로의 선순환 구조를 통해서 ‘진정한 그리스도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이것이 바로 구원에 이르는 진정한 길처럼 보여지고 있다. 또 이것은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자를 살리신 하나님을 의지하게 하기 위한 필수과정처럼 사도 바울은 설명하고 있다. 


고난을 통해 받는 '위로'의 은사

고난과 위로의 선순화 구조는 정말 간결하지만, 그리스도의 핵심 사상이 잘 반영된 것으로 보여진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이유는 구원을 받기 위해서다. 그럼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하는가? 고난에 참여하고, 이를 이겨낼 수 있는 위로를 주님과 사람들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리고 다시 고난받는 사람의 또 다른 위로자가 되어 주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나의 절대 목표 = 구원

난 정말 구원을 받고 싶다! 이는 나의 어떤 가치보다 가장 절대적이며 소중한 목표이다. 그럼 난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가? 혹시 욥의 친구들 처럼 겉으로는 위로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거나 근심을 풀어주기는 커녕 상처주는 자의 모습은 아니었는가? 


욥의 친구들과 다르지 않는 나의 모습 

생각해보면 내게도 욥의 친구들 모습이 많이 있었다.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주님뿐임을 알면서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하기까지한 모습이 많았다. 시작은 위로자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지만 내 모습을 상대가 어떻게 느꼈을까?를 생각해 보면 반성할 측면이 많아진다. 


미션 1. 고난 찾기 

내가 감당해야할 고난은 무엇일까?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소홀히 하지는 않았나? 내게 필요한 사람, 힘이 있거나 내게 득이 되는 사람에게는 잘 하고, 어려움이 처해서 위로가 필요한데 내게 도움이 크게 안되는 사람이라서 소홀했던 사람은 없었나?? 반성해 보게 된다. 


이 생각을 했을 때 마음에 걸리는 것이 하나 있다! 위즈돔이라는 지식공유 플랫폼을 통해서 만남을 요청하거 고민을 이야기했던 학생들이 있었는데, 나의 게으름과 해 봐야 내가 돈을 쓰게 되거나 번거롭게 되는 측면 때문에 신경을 거의 못 쓰고 지나는 때가 많았다. 


미션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

그리고 좀 더 주님이 나를 부르신 본질적인 질문에 대해서 고민하면서 내 이익이나 편함 혹은 내 명성 등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주님의 뜻과 본질에 집중하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위해서 노력을 해야겠다. 


고난 + 위로 = 하나님의 계획 

여기서 드는 생각은 나의 ‘고난’은, 곧 다른 누군가를 위한 ‘위로’라는 사실이다. 내가 경험한 고난은 곧 위로를 받고 소망을 만들어 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려는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사실이다. 어쩌면 그 ‘고난’에 주님의 뜻이 있을 수 있다! 


나의 고난 이야기

얼마 전에 병영멘토링에서 용사(사병)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고백했지만, 내 삶에서 첫 번째 자살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 본 때는 군생활이었다. 물론 그것으로 끝날 것 같았던 나의 고난은 그것이 바로 시작점이었다는 사실을 그 당시에는 전혀 몰랐다. 영하 40도의 추위와 싸우는 몽골에서 혹한기, 40여 개국의 다른 문화권 속에서 영어적 열등감에 휩싸여 감정의 나락으로 떨어져야 했던 선교단체 인턴, 다른 문화권에서 공권력과 밀고 당기겼던 중국 생활, 이성교제의 시련, 경제적 암흑기까지 생각해 보니 참으로 순탄하지만은 많았던 생활인 것 같다. 


나의 삶 속에서 주님의 손길을 경험하다

그 모든 시련들이 정말 내 힘으로는 어떻게 감당하기 어려운 것들이었고, 당시를 생각해 보니 두 손 두 발을 들고 주님을 의지했던 기억이 난다. “할렐루아” 아~ 정말 그랬구나~~ 주님은 내 삶 속에서 그렇게 구원의 손길을 이어오고 계셨다~~~ 아멘 아멘 할렐루야!!! 그 고난들 속에 주님의 뜻이 있으리라~ 


피하고 싶은 고난!!! 

앞으로도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면, 나를 다시 고난으로 인도하시겠지? 그렇게 내 힘으로는 감당하기 너무나 어렵고, 두려워서 지치고 무너져 있을 때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신 나의 하나님을 의지하겠구나! 결국 그렇게 구원을 경험해 나가겠지?? 그렇겠지??? 아~ 솔직히 피하고 싶다! 정말 거짓말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그 고난들은 피해 가고 싶다!! 너무나 고통스럽고 아파서 쉽게 눈물이 흘러 내린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하옵소서 

그러나 내가 정말 하늘의 소망을 바란다면~ 구원이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절대적인 가치라면 나는 그 고난을 감당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어쩐지 요즘 좀 편한가? 싶다 했는데.... ㅜㅜ;;;;;) 그러나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길 나는 기도할 수 밖에 없다! “주여 나의 뜻대로 마옵시고, 주의 뜻대로 나를 인도하소서” 


내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며 자복하여 이르기를 크시고 두려워할 주 하나님, 

주를 사랑하고 주의 계명을 지키는 자를 위하여 언약을 지키시고 그에게 인자를 베푸시는 이시여”

(다니엘 9장 4절) 

주님의 길을 따를 수 있는 믿음과 용기를 허락하시고, 

은혜 가운데 그 길을 묵묵히 가는 주님의 아들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