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말씀 묵상은 2014년 6월 22일 더작은교회 전영준 목사의 설교
"의인이 될 것인가? or 구원을 얻을 것인가?" (로마서 3장 9절 ~ 20절)에 대한 말씀 묵상입니다.
죄의 영향력(Sin impact)아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살아가는가?
우리는 항상 죄인과 의인 그 경계의 어느 사이 정도를 고민하게 된다. 난 의인인가? 아님 죄인인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우리는 죄의 능력 아래 갇혀서 죄의 영향력 안에 있다. 요즘 내가 자주 쓰는 용어로 Sin impact이다. 갈라디아서 3장 22절의 말씀처럼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에 가두었다.
죄의 영향력을 벗어나려는 노력?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라면 모두 의인으로 살기를 원하지 결코 죄인으로 죄 아래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 그 죄를 벗어 나기 위한 해결 방법은 무엇일까? 먼저 '죄'란 의미 먼저 살펴보자.
'죄'의 원어 '하말티아'는 원래 '표적에 이르지 못하다'는 뜻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뜻 안에서 빗나갔다>라는 의미이다!
다시 말하면 명확한 주님의 뜻에서 조금이라도 빗나가면 모두 '죄' 바로 죄 아래 있다는 뜻이다.
그럼 난 살면서 얼마나 죄에서 벗어나 있을까? 아님 얼마나 죄가 아닌 주님의 뜻에 맞춰서 살고 있을까? 중요한 것은 바로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럼 지금은 어떻게 살고 있는가?
지금의 삶을 다시 돌이키다.
기독교는 현재의 신앙이다. 현재성으로 주님과 소통하는 것이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본다. 나에게 왜? 이 말씀을 주셨을까? 말씀은 듣는 것보다 듣고 이를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난 지금 명확히 주님의 뜻(은혜의 뜻)에 명확히 있지 않다. 다시 말하면 죄 아래 있다. 그런데 돌이키고 싶다. 다시금 명확한 주님의 목표(타켓)로 가고 싶다. 주님의 사랑을 가장 갈망하며 나의 모든 삶의 뜻을 그 목표에 두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렇게 말씀 묵상을 하면서 발악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살고 싶어서 그렇다~
죄는 곧 죽음이다. 기독교의 다양한 죽음의 의미는 차치하고 난 지금 여러가지 풍요속에서 어쩜 영혼은 죽고 있는지 모른다. 왜? 주님의 뜻을 찾고자하는 열망과 갈증은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나오지 않는 것인가? 주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뜻인가? 난 정말 능력이 없다. 그러니 주님! 주님께서 살려주세요~ 나를 이끌어 주세요~ 한심하고 부족한 능력이지만, 전 말씀해 주시면 반응합니다. 그래서 기도 드리고, 난 할 수 없으니 주님께서 이끌어 주십사~ 살려 주십사~ 이제는 주님과 교제하며 동행하고 싶은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기도드립니다~
함께하시길,
인도하시길,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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