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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와 진로선택

내가 맞이한 두 번째 터닝포인트

이전에 활동하던 새벽이슬(대학생 선교단체)에서 작성했던 원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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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디서 맺혀질 이슬일까?

하재웅 


                                   <키르키즈스탄에서 활동할 때 찍은 사진>

총학과 기독교동아리 사이의 간격에서 새벽이슬을 만나다.

새벽이슬과 나와의 첫 만남은 새벽이슬 신문사에서 진행한 강의를 통해서였다. 대학 초년 시절 총학생회를 통해 사회에 대한 인식이 점차 자라날 무렵 진보적 인식의 접근은 교회와 대학생 기독교동아리의 인식으로 인해 제동이 걸렸다. 부모님의 적극적인 거부 반응까지 한몫해서 아마도 쉽게 자기합리화가 가능했으리라. 그러한 인식의 벽이 새벽이슬 강의를 통해서 깨지기 시작하고 그러한 활동의 연결 고리가 대학 새벽이슬까지 이어지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가 현실 세계에서 느껴지다.

  내게 있어서 하나님과의 만남은 참으로 단계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십일조를 통해서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으나, 그때는 그저 거부할 수 없는 이성적 존재로서의 인식이었다. 그러한 경험이 고3. 자연스럽게 대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에 대해 알아보려는 몸부림이 지속되었다. 의미를 찾지 못했던 예배가 내게 유의미한 시간으로 점차 다가오고, 찬양의 기쁨도 하나하나 알아가면서 깨달은 것이 성경을 읽는 맛이었다. 송이 꿀보다 더 맛있고 달다는 표현이 그대로 내게 적용되었다. 무엇보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읽게 된 것이 너무 큰 은혜였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경험한 것처럼 내게도 끊임없이 흐르는 은혜를 주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새벽이슬을 만나기 전에는 성경 속에 있는 하나님을 통해서 주님의 마음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신문을 통해서도 살아서 움직이는 주님의 마음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종종 지하철에서도 시민들이 카드 빛 때문에 자녀들과 함께 자살을 했다는 소식을 접하거나 할 때는 주님의 절규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해서 흐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던 기억이 여러 번 있다. 때로는 선거를 통해서 말씀하시더니, 이제는 미국의 선거까지도 내가 기도하지 못해서 오는 결과들에 대해서 책임의식이 느껴지기도 한다.

 <첫 활동지였던 몽골에서 농업개발 프로젝트를 참여하면서 찍은 사진>


해외봉사활동을 통한 두 번째 전환점


  그렇게 주님과 밀도 있는 교제를 하면서 내가 서있는 발의 위치를 줄곧 확인해야만 했다. 하나님을 만나고 내 인생에서 두 번 째 전환점(Turning Point)은 몽골에서 가졌던 해외봉사활동의 경험이다. 당시 KOPION(세계청년봉사단)이란 단체를 통해서 몽골에 있는 국제기아대책기구(KFHI)에서 활동을 했다. 약 반 년 시간동안 철저하게 주님과 교제하면서 미친 듯이 사역에만 집중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때이기도 했다. 저녁이면 영하 40도 이하까지 내려가는 추위 속에서 사역을 한 답시고 무모하게 활동했던 이야기들을 하자면 지면이 너무 모자랄 것이다. 특히 아이들을 전도해야하는데, 손발에는 동상이 걸려서 그 고통에 주님께 불평을 하다가 “사망에 그늘에 앉아 울고 있는 나의 자녀들…”을 부르며 주님께 의지하고 걸음을 띄었을 때 주위는 영하 몇 십도가 되어도 내 몸에서는 너무나 뜨거운 성령의 불길이 내 가슴 속에서 타오르고 있었다. 몽골에서의 활동을 마친 이후에도 DOULOS에서의 생활을 비롯해서 국내외에서 참여했던 활동들을 통해서 관심의 영역들은 지속적으로 확대되었다. 


“우리를 도우라”고하는 부르심

  바울이 고백했듯이 내가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은 주님이 나에게 주신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바울도 그 사명을 한 사건 한 사건을 통해서 체험에 나갔듯이 나 역시도 그러한 체험을 지속해 나가고 있다. 바울은 환상을 통해서 마게도냐 사람 하나의 요청을 들었고(사도행전 16장 9절) 그것은 곧 주님이 가진 로마 구원 사역의 시발점이 되었다. 우리가 흔히 아는 서구 기독교의 뇌관과 같은 역할이 된 것이다.

  나는 현재 외국인들을 통해서 “우리를 도우라”하는 외침을 듣고 있다. 그 외국인들은 바다 건너편에서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움 환경들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는 극빈자들이다. 태어나자마자 배고픔에 죽어가는 아이들에게도 나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시며 당신을 향한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라고 전하고 싶다. 그 사랑을 전하는 도구로 생각한 것이 ‘외교’이다. 그리고 해외에서 선교나 봉사활동을 하다보니, 그 영역은 자연스럽게 정부의 공적개발원조(ODA: 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분야로 좁혀지게 되었다. 또 그 분야는 한국국제협력단(KOICA)과 함께한 한국해외봉사단(Korea Overseas Volunteer)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 영역은 ODA 중에서 해외봉사단 사업으로 집중되었다. 현재도 해외봉사단 사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지만, 외국인들이 “우리를 도우라”고하는 외침은 여전히 강한 울림으로 남아 있다.


아직은 막막함 속에서 드리는 감사! 

  정책과 관련된 일을 하고 싶어서 사업에 대한 정책 분석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학업도 병행하고 있지만, 그 길이 선명하지는 않다. 때로는 막막함도 느끼는데 주님의 사랑을 통해서 내 사명을 자각 시켜주신다.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는 통로가 또한 새벽이슬이 되는 경우도 많다. 주님의 사랑에 감사드리며, 그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새벽이슬의 모든 관계자 분들에게도 깊이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