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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나를 왜 태어나게 하셨나요? — 크리스천 사업가를 위한 우울증 극복의 말씀

종로 CBMC 조찬모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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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2월 19일 · CBMC 종로지회 1762회 모임 | 조동천 목사 (예수뿐인 교회) 말씀 본문: 예레미야 20장 7절 ~ 21장 2절


사업이 힘들 때, "내가 왜 태어났을까?"라는 물음 앞에

사업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깊은 허탈감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말씀대로 정직하게 경영하려 했건만 배신을 당하고, 성실히 헌신했건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을 때, 사람들에게 선하게 대했건만 오히려 이용당하고 무너지는 경험을 할 때—그때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 이런 탄식이 터져 나옵니다.

"도대체 나는 왜 태어났을까?"

이 물음은 신앙이 없어서, 혹은 믿음이 약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 예레미야와 욥, 그리고 모세도 이 동일한 물음 앞에서 무너진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예레미야의 절망 — 구조적인 악 앞에 선 하나님의 사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말씀을 선포했지만, 그 말씀 때문에 핍박받고, 배척당하고, 존재 자체를 의심받는 현실과 맞닥뜨렸습니다. 악이 구조화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반드시 충돌과 고통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동천 목사님은 이것을 오늘 우리 크리스천 사업가의 현실에 그대로 대입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적인 원리에 의해서 사업을 악한 세상에서 해나간다는 건 필연적으로 힘든 상황입니다. 말씀대로 운영하고 싶은데 세상은 구조적인 악이 가득하고, 내가 진실하게 행하는 것을 이용해서 오히려 무너뜨리려 합니다."

예레미야 20장은 찬양과 절망이 롤러코스터처럼 교차합니다. 13절까지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14절부터 갑자기 자신이 태어난 날을 저주합니다. 조울증적 진폭처럼 보이는 이 감정의 변화가 사실은 하나님 앞에서 가장 정직한 인간의 고백입니다.

욥 역시 같습니다. "내가 태어난 날이 멸망하였더라"(욥 3:3), "어찌하여 내가 태에서 죽어 나오지 아니하였던가"(욥 3:11). 하나님의 인정을 받았던 사람들, 하나님께 쓰임받았던 사람들조차도 존재 자체가 짐처럼 느껴지는 순간을 경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고백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고백을 거절하지 않으십니다

유교 문화권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표현입니다. "어머니의 배가 내 무덤이었으면"이라는 말을 자녀가 내뱉는다는 것은 불효로 읽힐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고백을 지워버리지 않고 그대로 담았습니다. 하나님이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은 말씀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고백해도 됩니다. 하나님은 '믿음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라고 꾸짖지 않으십니다."

사업이 너무 힘들어서 "주님, 나는 정말 쓸모없는 존재인가요?"라고 따져도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다 이해하고 계십니다. 엘리야도, 예레미야도, 욥도—그 이후에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끊기지 않았습니다.


가장 절망적일 때, 하나님은 나를 부르신다

예레미야 20장은 자기 저주로 끝납니다. 응답도 없습니다. 그런데 21장 1절에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집니다. 시드기야 왕이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요청합니다. "당신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당신 없이 이 나라가 버틸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예레미야가 가장 무너져 있을 때, 아무 조치도 없이 그대로 그를 불러 쓰셨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입니다. 살인자이자 도망자로 40년을 광야에서 보낸 뒤, 완전히 밑바닥에 서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내 백성을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 3:10). 모세는 말합니다. "내가 누구이기에…"(출 3:11). 그럼에도 하나님은 보내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갔습니다. 다시 물고기 잡으러 돌아갔습니다. 그때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오셔서 말씀하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바울은 성도를 잡으러 다니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다"(행 9:15)라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패턴은 일관됩니다. 밑바닥의 인생을 통해 위대한 일을 이루십니다.

왜냐고요? 그 일이 사람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아닌 은혜로 — 사업도, 사명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은 이 점을 날카롭게 짚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내 능력입니까, 내 자격입니까? 절대적인 은혜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역도, 사업도, 은혜로 하는 겁니다."

우리는 종종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건강하고, 실력이 있고, 주변에서 인정받을 때 하나님이 쓰실 것이다.'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를 말합니다. 바울은 고백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라"(고전 15:10).

번데기가 자신을 징그럽다고 우는 것을 본 적 있습니까? 그냥 묵묵히 때를 기다립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가 되면 나비가 됩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지금의 상태 그대로,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위대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절망하려야 절망할 수 없는 이유

오늘 말씀의 결론은 단순하고 강력합니다.

"우리는 절망하려야 절망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이 여전히 나를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사업이 어렵고, 가족이 힘들고, 세상이 하나도 바뀌지 않는 것 같은 오늘이라도—괜찮습니다. 인류 역사는 하나님의 섭리에 의해 움직입니다. 하나님이 쓰시겠다고 하시면 있는 모습 그대로 우리는 일어날 수 있습니다.

원망도 하나님께 하십시오. 따져도 하나님께 하십시오. 사람들의 평가도, 자기 자신의 혹독한 평가도—내려놓으십시오. 나를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나에게 상 주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이 모든 연약함 그대로, 하나님은 당신을 마음껏 사용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종로CBMC 2월 19일 설교 인포그래픽 (Gemini 생성)

2026년 2월 19일, CBMC 종로지회 제1762회 정기모임에서 조동천 목사(예수뿐인 교회)님의 말씀을 들은 성도가 말씀을 정리한 글입니다.